본문 바로가기
문학

한국 문단 역사상 가장 뜬금없고, 가장 위대한 데뷔작

by 환상의나비 2021. 2. 7.

뜬금없는 데뷔작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서,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일보에 발행하는 월간지 중에 1967년부터 발행되고 있는 여성동아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연히 여성층을 대상으로 한 잡지인데

 

1970년에 여성동아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 공모전을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당시 나이 마흔 살, 자녀가 5명 있던 한 주부가 이 여성동아 공모전에 참가합니다.

 

잠깐 명문대를 다니긴 했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했으며 평생 글을 써본 적도 없었던 사람이었죠.

 

원래 이 사람은 장편 소설을 낼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짧은 논픽션을 써서 낼 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사실만 쓰려니 쓸 얘기가 너무 없다면서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 한번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전업주부가;;

 

그것도 3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을!

 

훗날 이 작가는 자신에 이런 심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그러나 막상 쓰기 시작하고 보니, 사실을 증언해야 하는 논픽션에서 나는 자주자주 거짓말을 시키고 있었고, 거짓말을 시킴으로써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거짓말의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니라, 허구로써 오히려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진실에 가깝게 그릴 수 있다는 소설의 초보를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 <창밖은 봄> 서문 (1977)

 

자신도 모르고 있던 내면에 지니고 있던 소설가적 기질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던 겁니다.

 

물론 이런 기질과 적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꾼으로 대성하는 것은 아니죠.

 

근데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냅다 대상으로 선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매년 여성동아 소설 공모전이 있었지만,

 

이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은 그 이후로 단 한 편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진 않은데 2010년, 42회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듯 합니다. 그 이후 수상작이 없군요. -

 

 

 

이 소설가의 이름은 박완서고, 해당 작품은 <나목>입니다.

 

 

작품의 주배경은 6.25가 한창 진행 중인 서울, 미군 부대 PX의 초상화부입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가족 부양을 위해서 일하는 주인공이 초상화부에서 맡은 일은 미군들을 대상으로

 

“와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이렇게 멋진 분이니까 당연히 예쁜 여자친구 정도는 있겠죠?

 

아, 여자친구 있으시구나! ^^ 그렇다면 이 훌륭한 화가분들에게 의뢰해서 스카프나

 

손수건에 여자친구 초상을 그려서 보내시는 건 어떤가요? 여자친구가 정말 감동할 겁니다!”

 

라고 영어로 말하면서 미군들이 초상화를 그리게 만들도록 꼬시는 겁니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시지 않나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던 주인공은 같은 직장 동료인 화가들을

 

환쟁이라고 경멸하고, 혼자 회의감에 빠져서 궁상을 떠는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초상화부에 평단에서 인정받는 진짜 화가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창작에 집중하지 못하고, 전쟁통에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주인공이 화가에게 느끼던 감정이 동감을 넘어 거의 애정에 가까워 졌을 때쯤

 

화가는 생계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혼을 위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은 그 그림이 다 죽어가는 고목 같은 그림이라는 사실을 보고 절망하죠.

 

 

주인공이 본 고목 그림의 느낌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요?

 

주인공은 죽어가는 나무의 모습이 마치 영감을 잃고,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끝나가는 화가의 분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끝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주인공은 기사로 화가의 죽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유작전에서 예전에 봤던 고목 그림의 완성본을 마주하죠.

 

박수근 <나무와 여인>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주인공은 문득 깨닫습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훗날 그녀는 자전적인 작품인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 이 시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 때문에 그들이 먹고 산다는 교만한 마음과 엉터리 영어를 온종일 지껄여야 하는 스트레스를 주체 못 해 툭하면 그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방자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화가 한 명이 들어와서, 평소 하듯이 그 사람을 대하고 있었죠.

 

어느 날, 그 화가가 자신의 그림이 실린 화집을 들고 와서 자신이 입선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 밑에 들어 있는 작가 이름을 보고 처음으로 나는 그가 박수근이라는 걸 알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박완서 본인도 박수근 화가에게서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게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얼핏 이라도 좋으니 예술적 고뇌, 억압된 우울한 정열 같은 걸 훔쳐보고 싶었다."

"그에게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술적 고뇌 대신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노동의 충족감이었고, 우울한 정열 대신 단순 노동의 평화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되는거죠.

 

"그는 예술보다는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는 불필요할 때 결코 그 천재성을 노출 시키지 않았다."

"그에 대한 친근감과 동류의식은, 나는 이 안에서 유일한 서울대학생이다, 적어도 서울대학생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전락했나 따위 우월감과 열등감의 콤플렉스에서 놓여나는 데 힘이 되었다."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싸잡아 능멸하던 고약한 버릇에서 개별적으로 볼 수 있는 관심과 아량을 조금씩 회복해 갔다."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자신의 천재성과 입지에 대해서 숨기고 오히려 묵묵히 일하는 박수근 화가의

 

모습이 당시 박완서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이 이런 인연으로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죠.

 

 

 

박완서 작가는 훗날 자신이 소설을 써야만 했던 이유가 6.25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때 내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그래, 언젠가는 이걸 소설로 쓰리라, 이거야말로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 상상력이 먹혀들 여지가 없을 만큼 그 시절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끔찍하기도 했지만, 나 혼자만 보고 겪은 사실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이 소설에 대한 욕심보다는 증언 쪽에 더 중점을 두게 했다.”

-<목마른 계절> (1987) 개정판 후기

 

이처럼 야만적이었던 시대를 기록하기 위해서 펜을 들었지만 정작 그녀의 글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절망과 분노가 아니라 그런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희망과 사랑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지치지 않고 글을 써나갑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같은 본인의 자전적인 소설들은 물론이고

 

돈이 생명의 인과 관계가 역전되는 자본주의의 폐혜를 다룬 <가장 오래된 농담>

 

중산층의 속물 근성을 여과없이 보여줬던 <휘청거리는 오후>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미혼모를 다룬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미친듯이 걸작들을 써내려 나갑니다.

 

 

끝없이 자신을 쇄신하며 지치지 않는 창작욕으로 계속 펜을 들었던,

 

박완서 작가는 항상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1월 22일 암 투병으로 사망하기 1년 전에 낸 책에서 조차도 그랬습니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박완서 작가는 스스로 말했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았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