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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재벌가의 이혼과 아주 오래된 농담

by 환상의나비 2020. 6. 2.

2020년 1월에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 소송이 끝났습니다. 과정이 길었으나 결론만 요약하자면 이부진 사장이 자녀 양육권을 가지고, 임우재 전 고문에게 위자료로 약 14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이는 임우재 전 고문이 이부진 사장의 재산 2조 5000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라며 요구했던 위자료 1조 2000억원의 0.7%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법원이 이러한 판결에 대해 내리기까지 결혼 시에 가지고 있었던 재산, 자산 형성에 미친 기여도, 자녀 양육에 적합한 환경, 이혼의 귀책 사유 등에 대한 여러가지 고려가 있었을 겁니다. 판결에 수긍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법적인 판결과 별개로 이 작품이 생각이 나더군요.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2000

이 책의 주인공 심영빈은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인데 위로는 미국으로 떠나서 사업을 하며 가족과 거의 만나지 않는 형인 영준, 아래로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늦둥이 여동생 영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어교사인 아내, 수경이 있고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두 명의 딸이 있죠.

 

작품을 끌고가는 플롯은 크게 두 줄기인데, 하나는 주인공 영빈이 첫사랑인 현금과 외도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입니다. 현금과 영빈의 어린 시절 인연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의 우연한 만남, 현금의 드라마틱한 삶, 가장과 의사로서 인생의 부담감에 질식할 것 같던 영빈이 가식없는 현금에게서 해방감을 느끼고 외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의 플롯은 여동생 영묘와 결혼한 재벌가의 아들 경호가 암에 걸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입니다. 영빈은 환자가 자신의 병세에 대해서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태어난 것 죽는 것도 선택은 아니지만 어떻게 죽느냐 정도는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난 것도 죽는 것도 선택은 아니지만 어떻게 죽느냐 정도는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중략) 죽을병을 아니라고 속이는 것은 아주 귀중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권리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경호의 가족들은 그가 받을 정신적 충격을 걱정해 절대로 알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전부터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 빨리 삶의 의욕을 잃을거라고 말하면서요. 영묘는 고민하지만 결국 경호의 집안 사람들 뜻을 따르기로 합니다. 그래서 경호는 병원에서 현대 대체 의학과 무당의 굿을 들으며 남은 삶을 보내게 됩니다. 경호를 간호하면서도 영묘는 계속 회의감을 느낍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금쪽 같은 시간을 저렇게 등신처럼 살게 해서는 안 된다. 단 며칠을 살아도 살맛을 온전하게 느끼며 살아야 할 게 아닌가. 사는게 싶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결국은 죽을 줄 아는게 생을 아름답고 살맛하게 한다. 안다는 건 그렇게 좋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절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묘는 결국 경호의 집안에 맞서지 못합니다. 그렇게 무력하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제사를 치른 후에 유산의 분배와 자녀의 미래에 대해서 시댁과 갈등하던 영묘는 문득 깨닫습니다. 경호의 식구들이 끝까지 불치병에 대해 숨겼던 건 그가 처자식을 위해 한 마디 유언을 남기는 것조차 막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경호가 죽는 순간까지 암에 걸렸다는 걸 모르도록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신경을 쓴 것은 그가 처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유언마저도 남길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 고약한 생각은 일단 들기가 잘못이었다. 증거가 있는 것도, 누가 일러준 것도 안인 저절로 우러난 생각을 확신을 가지고 믿어버리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목격이지 망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생명보다 돈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작품 내에서 수없이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구절처럼 '원망이나 후회, 의심 따위가 결국은 다 돈 문제로 귀결되'는 시대에 돈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보편적 상식을 역설하는 작품이 오히려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그러나 이 작품이 특별한 건 돈을 위해 지불되는 생명이 가족이라는 점, 그리고 그 타의적 희생의 과정이 가족애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유대관계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호의 투병은 가족들에게 누구의 손에도 피를 묻히지 않고 상속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뿐입니다. 가족은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그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요. 주인공의 독백처럼 '가족애라는 미명 뒤에 실은 얼마나 더러운 욕심과 무자비한 이기심이 숨겨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등장한 주인공의 형, 영준의 재치로 영묘와 시댁의 갈등이 극적으로 해결됩니다. 가장 큰 사건의 해결이 맥이 빠질 법도 한데, 박완서 작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작품을 이어갑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사는 것 같던 현금은 늦게라도 아들을 낳기 위해 방문했던 산부인과에서 영빈의 부인과 알게 되어, 영빈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돈도 나를 움직일 수 없고, 도덕적인 비난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난 그게 내가 도달한 최고의 경지,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 그 착한 여자에게서 남편을 빼앗는 건 옳지 못한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영묘가 시댁과 갈라서게 되는 이유가 경호의 죽음 때문이라면, 반대로 영빈이 현금과 헤어지게 되는 까닭은 수경이 임신한 생명의 탄생인 것이죠.

 

그리고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영빈은 치킨집을 운영해 치킨 박이라고 불리는 암 환자를 맡게 됩니다. 그는 환자의 아내에게 초기에 암을 발견하게 되어 치료 가능하다고,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이 걱정되니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말합니다. 영묘의 시댁 때문에 불신감이 쌓여있던 영빈은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얼마 후 치킨 박은 병원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 됩니다. 고치지도 못할 암을 고치기 위해서 그 많은 돈을 쓰는게 가족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지 안다고 적은 유서를 남기고요.

 

돈을 위해 암에 걸린 가족을 방치했던 재벌 가족과 돈을 위해 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영세 자영업자의 극적인 대비는 엄청난 아이러니를 불러 일으킵니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의 모습은 아직 가족애가 허울 뿐이 아닌 진정한 가치라는 걸 말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그런 가족애로는 버틸 수 없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아마 오래된 농담 챕터의 현금과 영빈의 대화에서 따왔을 겁니다. 영빈이 가족들이 반대하여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그러자 현금이 그건 거짓말 아니라고, 농담이라고 말하는 부분이죠.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말이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면, 선택의 순간이 닥쳤을 때 농담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삶이 더 나은지, 고통스러운 현실이라도 직면하고 부딪혀서 싸우는게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모두들 선택의 순간만큼은 주체적으로 결정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임

"페미니스트인 척하는 남자를 젤루 조심해야 된데. 위선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족속이래나 봐."

아내는 눈을 흘기며 애교스럽게 말했지만 영빈은 뜨끔했다.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저 대사가 여기저기 인용되고 있는데 뛰어난 작품이 재조명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가능하면 대사 한 줄이 아니라 전반적인 맥락을 다 파악하고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덧붙입니다.

 

이는 영빈의 아내인 수경이 했던 대사입니다. 아들이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구박 받는 것을 서러워하던 아내에게 영빈이 '나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하자 수경이 받아치는 부분이죠. 결국 수경은 영빈 모르는 사이에 2번이나 아이를 유산하고, 결국 마지막에 아들을 임신하는데 성공하죠. 위에 언급된 산부인과에서 현금과 영빈 아내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습니다. 어찌보면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폐습이 영빈과 현금의 불륜이 끝나는 계기가 된 셈이죠.

 

작품 내에서의 전후의 맥락을 봤을 때, 저 대목이 뜻하는 바는 '남편이 부인이 모르는 죄를 지은 탓에, 죄책감에 가부장적 악폐습에 대해서는 여성 편을 들어주는 것 아니냐?' 라는 뜻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반농담식으로 지나가는 부분이지만 전후 사정을 다 아는 독자 입장에서는 서늘한 대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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