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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9

콘텐츠가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 <열광금지, 에바로드> 애니메이션 매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익숙할 겁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전 세계의 서브 컬쳐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 중에 하나이며, ​ 당대의 히트작을 넘어서 제작된지 25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까지 끝없이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작품이니까요. ​ ​ 파격적인 메카닉 디자인과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캐릭터성, ​ 소년만화의 기존 관습을 뒤엎고 주인공들을 정신적인 궁지로 몰아가는 과정, ​ 단 한 사람의 결정에 인류의 존망이 결정된다는 설정 등은 수많은 아류작을 낳았습니다. ​ ​ 단순히 모니터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를 넘어 수많은 파생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 피규어 같은 기존의 애니메이션 수익원은 물론이고, ​ 일본의 유명 놀이공원 후지.. 2022. 6. 19.
하드SF가 반복 회귀물과 만나면 <철수를 구하시오> 표지 (가짜과학자 / 에이시스 미디어) ​ 유머러스한 제목과 표지만 보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하셨다면 처음부터 당황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 이 작품은 밑도 끝도 없이 첫 화부터 운석 충돌로 인해서 지구가 멸망하고, ​ 그로 인행 평범한 인간으로서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주인공 '철수'가 ​ 다시 운석 충돌 전의 시기로 회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을 좋은 의미에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 운석 충돌이라는 지구적 재앙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또한 초현실적인 능력이 아니라 ​ 순전히 과학적 기술에 의한 해결책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 ​ ○ 명확한 목표 ​ 모든 서사 작품에는 드라마가 필요합니다. ​ 드라마에 대한 다.. 2022. 3. 9.
니체와 토리노의 말, 그리고 밀란 쿤데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에 하나로 꼽히는 니체지만, 그의 인생 말년은 상당히 불우했습니다. 1889년 니체는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다가 문득 한 장면에 시선이 꽂히게 됩니다. 토리노의 광장에 말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였죠. 아무리 마부가 채찍질을 해도, 그 말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걸 본 니체는 달려가서 말의 목을 껴안고 엉엉 울다가 쓰러졌습니다. 몇 일간 침대에서 죽은 듯이 누웠있던 니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을 중얼거렸다고 하네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 라고... 이 때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세상을 떠났다고 봐도 될 겁니다. 그 후에 그는 10년 동안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가족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죠. 도.. 2021. 6. 30.
밀란 쿤데라 - <농담> 슬픔, 우울의 공감보다 사람을 더 빨리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다. (그 가까움이 거짓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말없이 고요하게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이런 분위기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방어도 잠들게 하며, 섬세한 영혼도 속된 자도 모두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을 가까워지게 만드는 방식 중 가장 쉬운 것이면서 반면에 가장 드문 것이기도 하다. 그러자면 자신 속에 형성되어 있는 정신적 태도라든가 꾸며낸 행동과 몸짓들을 버리고 아주 단순하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단번에, 준비도 없이)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 수많은 가짜 얼굴들 뒤에서 눈먼 사람들처럼 늘 길을 더듬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 2021. 3. 22.
오늘의 한 문장 - <1984> 조지 오웰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명사와도 같은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신어(Newspeak)로 명명되는 새로운 개념의 언어가 등장합니다. 얼핏 보면 기존의 언어에 없다가 추가된 새로운 의미를 가진 언어를 의미하는 듯하나 주인공 윈스턴이 신어 사전을 만드는 인물과 나누는 대화를 보면 그런 생각은 산산히 깨지죠. "자네는 우리의 주된 임무가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네. 우리는 매일 수십, 수백 개의 낱말을 없애고 있지. 말하자면 우리는 말을 뼈만 남도록 잘라내고 있는 셈일세" "'탁월한'이니 '휼륭한' 같은 모호하면서 쓸모도 없는 말들이 수두룩하게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 좋은' 이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이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더 좋은' 이라고 하면 될 것.. 2021.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