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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오늘의 한 문장 - <페스트> 알베르 까뮈

by 환상의나비 2021. 1. 1.

코로나로 인한 펜더믹 시국에 예술과 문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작가 옌롄커는 한겨레에 특별기고한 "역병의 재난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한 문학"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문학은 아주 멀고 역병은 아주 가까이 격동하고 있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거세게 밀려오는 재난 앞에서 문학의 무력과 무능을 실감하게 된다. 문학은 마스크가 되어 역병 지역으로 보내질 수도 없고 진정으로 의료를 위한 방호복이 되지도 못한다. 음식이 필요할 때, 문학은 빵과 우유가 되지도 못하고 채소가 필요할 때, 무나 배추, 시금치가 되지도 못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 떨고 있을 때, 한 알의 신경안정제가 되어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코로나 시국에서 오히려 판매량이 상승한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게 바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입니다.

 

페스트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하고, 곧 페스트 퍼지기 시작합니다. 감염자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도시가 봉쇄되고, 사람들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와있는 페스트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작중에서 페스트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병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극 중 인물들은 누구도 살리지 못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죽음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무기력함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의사로서 끊임없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주인공 리외를 보며 다른 등장인물이 그에게 "영웅적인 연극을 집어치우고 전반적인 해방을 기다립시다."라고 말하자 리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리고 성실성이 대체 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죠.

 

일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그것은 나의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페스트의 문장은 시종일관 절제되어 있고 담담합니다. 분명 1인칭 시점인데 마치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쓰는 것처럼 관찰자적 시점으로 쓰여있죠. 작중에서 페스트를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은 대단한 사명감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그것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건대에 헌신한 사람들이 사실 그 일을 하는 데 그렇게까지 큰 보람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때 처지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거짓말처럼 페스트가 완화되기 시작하고,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보상을 받을 수 있는건가 생각되는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작가는 연달아서 충격적인 사건을 터트리면서 독자들을 충격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 책을 썼던, 작가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죠.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까뮈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서도 자신을 영웅화 시키지 않는 인물인 듯 합니다.

 

코로나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무기력함과 부조리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모든 극단적인 상황에서, 까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봐야겠죠.

 

2021년은 다들 행운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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