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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콘텐츠가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 <열광금지, 에바로드>

by 환상의나비 2022. 6. 19.
신세기 에반게리온 (제작사 : 가이닉스)

 

애니메이션 매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익숙할 겁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전 세계의 서브 컬쳐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 중에 하나이며,

당대의 히트작을 넘어서 제작된지 25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까지 끝없이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작품이니까요.

파격적인 메카닉 디자인과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캐릭터성,

소년만화의 기존 관습을 뒤엎고 주인공들을 정신적인 궁지로 몰아가는 과정,

단 한 사람의 결정에 인류의 존망이 결정된다는 설정 등은 수많은 아류작을 낳았습니다.

단순히 모니터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를 넘어 수많은 파생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피규어 같은 기존의 애니메이션 수익원은 물론이고,

일본의 유명 놀이공원 후지큐 하이랜드에는 에반게리온을 위한 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으며,

에반게리온 20주년을 기념한 테마 신칸센 프로젝트가 이뤄질 정도로 일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오리지널리티의 부족, 정돈되지 못한 플롯, 설정 놀음만 하는 작품이라는 등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역사상 가장 센세이션했던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지브라 스튜디오의 작품들이나 포켓몬스터 시리츠처럼 여전히 돈을 벌어다주는 애니메이션 콘텐츠들이

일본에는 아직 많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그 중에서도 특별합니다.

위에 언급된 작품들처럼 대다수의 대중을 겨냥한 작품이 아니라,

순전히 특정 계층, 흔히 말하는 오타쿠만을 겨냥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열광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돈을 아낌없이 작품에 쏟아부었고,

열렬한 팬덤만으로도 충분히 메가히트를 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런 작품인만큼 여러가지 시리즈, 여러가지 매체로 나왔는데요,

덕분에 사골게리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죠.

그리고 그 사골게리온 이벤트 중 하나로 인해 이 책은 시작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에반게리온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했던

총감독 안노 히데야키는 기존 에반게리온 제작사인 가이낙스를 뛰쳐나와

스튜디오 카라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새로 설립합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라는 이름으로 극장판 시리즈를 새로 만들기 시작하죠.

<에반게리온:서> 한국판 포스터

 

처음에는 '또 우려먹기냐'라는 부정적 평가가 대다수였으나

처음으로 개봉한 <에반게리온:서>의 퀄리티가 예상외로 높자 사람들은 또다시 아낌없이 돈을 씁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에반게리온:파>는 그야말로 미친듯한 열광을 끌어내죠.

이렇게 다음 시리즈에서 대한 기대치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상황에서

제작사에서는 신극장판 3번째 시리즈 <에반게리온:Q> 개봉을 앞두고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라는 이름의 이벤트로

바로 세계 각지에 특정 기간만 들어서는 에반게리온 부스가 열리는데,

이 모든 부스에서 스탬프를 받아 오는 사람이 있으면 특별한 상품을 주겠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그 상품이 어떤건지 공개 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 이 공고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드디어 안노가 정신이 나간건가...'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세상을 넓고 이 미친 이벤트를 실제로 수행하겠다고 나선 팀이 있었습니다.

그 팀이 바로 한국에 있는 청년 2명이었고,

그 둘이 자신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작품이 <에바로드>입니다.

다큐멘터리 <에바로드> 포스터

 

처음부터 미친 짓이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진행되는 과정이 정말 다사다난했더군요.

있는 돈, 없는 돈 짜내서 어떻게든 해외 여행 일정을 짜고,

중간에 중국 여행이 막혀서 포기할 뻔하기도 하고,

<에반게리온:Q>를 보기 위해 일본까지 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후반부에는 '본인들 스스로 좀 현실을 살아야겠다'라는 에반게리온의 주제에 대한 자아성찰도 하고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스탬프 랠리를 완주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기록용으로 남긴 영상을 편집하고 개봉용으로 만든거죠,

ost 작업 등에 부족한 비용은 텀블벅을 받아 충당하며 간신히 작품을 만들어 작은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작지만 열렬한 호응을 받아 이벤트성이지만 메가박스에서 정식 상영까지 하게 되죠.

그리고 <표백>으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한 취재를 담당하게 됩니다.

이 미친 덕질을 기어코 성공 시킨 청년 2명의 일화가 상당히 감동 깊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제안합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 장강명

 

그렇게 해서 허구와 진실이 교묘하게 배합되어 나온 작품이 바로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입니다.

아무래도 장편 소설이다 보니 스탬프 랠리의 내용 외에도 주인공의 개인사에 대한 비중도 큽니다.

그리고 소설의 밀도를 위해서 등장인물도 1명으로 줄였고요.

이 작품 역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제2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하였죠.

<에바로드>를 알리는데 이 소설이 크게 기여하였음은 당연하고요.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이렇게 되는거죠,

  1. <신세기 에반게리온> 원작 제작

2. 신세기 에반게리온 원작을 기반으로 한 <에반게리온 : 신극장판> 개봉

3. 신극장판 개봉 기념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 이벤트 시작

4. 해당 이벤트 수행 과정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 <에바로드> 제작

5. 그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소설 <열광금지,에바로드> 제작

그야말로 콘텐츠가 콘텐츠를 낳는 과정의 정석입니다.

아무튼 대다수의 사람들이 <열광금지, 에바로드> 작품을 본 이후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눈치보지 말고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같은 감상을 많이 언급을 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위에 언급된 부분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좀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열광금지, 에바로드>야 말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디.

기본적으로 <에바로드>는 영상 콘텐츠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촬영, 편집은 물론이거나 그에 대한 기획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영상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ost도 본인들이 직접 제작하였죠.

결국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글, 영상, 음악이 모두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던 겁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이 많은 작업을 혼자서 다 하는게 정말 어려웠을 겁니다.

이를 제작하기 위한 비용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요증은 워낙 툴이 좋아져서 이런 작업들이 소수 인원으로도 해치울 수 있게 되었죠.

<열광금지, 에바로드> 책 중간 중간에도 이러한 영상툴, 작곡툴에 대한 언급이 수시로 나옵니다.

부족한 자본은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고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스스로의 창작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결국 글을 써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능력도 빼먹을 수는 없죠.

앞으로 사람의 능력치의 척도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것이

'직접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덕후들을 겨냥한 작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특성 때문에 정말 많은 2차 창작물들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는 정말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팬픽 소설 등도 있고요.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이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창작자가 된거죠.

콘텐츠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시대에, 단순 소비자로 남지 않도록 해야겠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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