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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토리노의 말, 그리고 밀란 쿤데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에 하나로 꼽히는 니체지만, 그의 인생 말년은 상당히 불우했습니다. 1889년 니체는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다가 문득 한 장면에 시선이 꽂히게 됩니다. 토리노의 광장에 말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였죠. 아무리 마부가 채찍질을 해도, 그 말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걸 본 니체는 달려가서 말의 목을 껴안고 엉엉 울다가 쓰러졌습니다. 몇 일간 침대에서 죽은 듯이 누웠있던 니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을 중얼거렸다고 하네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 라고... 이 때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세상을 떠났다고 봐도 될 겁니다. 그 후에 그는 10년 동안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가족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죠. 도.. 2021. 6. 30.
정교하게 쌓은 갈등의 맥없는 해소 - <미나리> 비록 코로나로 인한 영화 시장의 전반적인 위축, 기대작들의 개봉 및 촬영 연기 등으로 인해 이전 시상식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긴 했지만 4월 26일 진행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의미 있는 수상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의미 있는 수상들은 여우 연기상에서 나왔죠. 와 로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했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올해 로 3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기록은 총 4회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캐서린 햅번 이후로 처음입니다. - 혹시나 해서 부연하자면, 캐서린 말고 오드리 햅번은 로마의 휴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 할리우드 여배우의 대명사 같은 메릴 스트립이 여우주연상 2회, 여우조연상 1회 수상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 2021. 5. 21.
미우라 켄타로 작가님의 부고를 듣고 베르세르크는 1989년부터 영애니멀에서 연재된 중세 판타지 만화입니다.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세계관과 등장인물들 간의 처절한 관계 구도, 그러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의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을 놓치지 않는 모습들을 종이를 찢고 나올 듯한 실감나는 작화로 그려냈던 작품입니다. 점프나 썬데이 등의 대부분의 만화 잡지가 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위한 작품들을 연재하는 동안 미우라 겐타로는 인간의 본연적인 욕망과 세상의 억압,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물상을 그려냈던 진정한 의미로 성인들을 위한 만화가였습니다. 베르세르크는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40권의 단행본이 발매되었습니다. 연재 기간 대비 연재 분량이 많지 않으나.... 이 작품만큼은 이를 작가의 번아웃이나 능력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을 .. 2021. 5. 20.
전설의 진짜 시작 - beatles <rubber soul> 야구처럼 스탯으로 줄 세우기가 불가능한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최고를 가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문화예술의 분야 중 하나에서 '해당 분야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물으면 제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도 단 하나의 이름을 고르는데 망설이게 될 수 밖에 없겠죠. 무의미한 vs 놀이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요 ㅎㅎㅎ 하지만 클래식계에 최고의 작곡가를 뽑기 위해 물어 봤을 때,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말러, 슈베르트, 쇼팽,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처럼 수없이 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제치고 바흐가 가장 많은 표를 받는 것처럼 대중 음악사에서도 가장 위대한 뮤지션을 하나 꼭 골라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경우 비틀즈가 가장 많은 표를 받지 않을까요? 현 세대에서 비.. 2021. 5. 2.
만화의 연재 시스템이 만들어 낸 걸작 의 원작 만화가로 유명한 나가이 고가 얼마 전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감에 쫓기면서 눈앞의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50년이 지났다." 라고요. 언제부터 정립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만화라는 매체는 대부분의 경우 연재를 합니다. 물론 나 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완결이 된 채로 나오는 만화도 있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비정기 연재한 처럼 12년동안 7권이 나온 작품도 있습니다만. 같은 대표적인 만화 잡지를 표함하여 대부분의 만화 플랫폼들은 주간 연재를 합니다. 그래서 마감에 치여서 미친 듯이 야근하는 만화가, 그리고 어떻게든 마감 날짜 전에 원고를 받으려고 하는 편집부의 눈물나는 노력 등은 만화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죠. 심지어 출판 만화가 아니라 웹툰이 주류가 된 지금 시.. 2021. 4. 17.
밀란 쿤데라 - <농담> 슬픔, 우울의 공감보다 사람을 더 빨리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다. (그 가까움이 거짓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말없이 고요하게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이런 분위기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방어도 잠들게 하며, 섬세한 영혼도 속된 자도 모두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을 가까워지게 만드는 방식 중 가장 쉬운 것이면서 반면에 가장 드문 것이기도 하다. 그러자면 자신 속에 형성되어 있는 정신적 태도라든가 꾸며낸 행동과 몸짓들을 버리고 아주 단순하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단번에, 준비도 없이)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 수많은 가짜 얼굴들 뒤에서 눈먼 사람들처럼 늘 길을 더듬던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 202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