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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민 케인>과 <맹크>로 보는 영화의 본질

by 환상의나비 2022. 5. 7.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를 뽑으라면 질문을 받은 모든 사람이 전부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겁니다. 그리고 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도 아닌 만큼 그 수많은 후보군 중에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선뜻 말하기도 어렵죠. 그러나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최고의 작품 후보군을 추려볼 수는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음악 분야 관계자들에게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음반을 선택해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본인의 취향과 별개로-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 음반을 뽑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처럼, 영화사에도 그런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후보군 중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최고의 자리에 위치했던 작품이 바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죠.

영화 <시민 케인> 포스터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10년에 한번씩 수 천명의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에 대한 설문을 하는데, 그 투표에서 몇 십 년간 1위를 먹은 작품이거든요. 무려 1962년부터 2002년까지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충분히 조명 받았다고 판단이 된건지, 가장 최근 투표에서는 히치콕의 <현기증>이 1위를 가져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투표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시민 케인>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여줬죠.

그래서 이 <시민 케인>이라는 작품은 영화를 조금이라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조금이라도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시민 케인>은 자신이 만든 대저택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언론 재벌 케인이 '로즈 버드'라는 의문의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후, 그의 죽음을 취재하는 기자 톰슨이 '로즈 버드'의 의미를 쫓아 케인의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애를 되돌아 보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액자식 구성이 생각나지 않나요? 액자 바깥의 이야기는 케인이 임종 전에 남긴 '로즈 버드'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의 과거를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고, 액자 안쪽의 이야기는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케인과 가까웠던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그의 행적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이 항상 그렇듯이 액자 안쪽 이야기가 더 중요하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헤어져 성장한 케인은 젊은 나이에 언론사 사장으로 대성공을 하지만, 사적으로는 진정성 있는 유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위태위태한 인간 관계를 이어나갑니다. 이러한 결핍으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을 얻기 직전에 몰락하고 맙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사람조차 모두 그를 떠난 후, 자신이 지은 거대한 저택에서 외롭게 숨을 거두게 되죠.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밝혀진 '로즈 버드'의 의미는 그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어머니와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썰매에 적힌 글자라는게 밝혀지면서 작품이 끝납니다.

박수를 치는 케인의 움짤에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오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어째서 위대한 작품인가?

위대한 각본과 위대한 연출, 위대한 연기가 모두 합쳐져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빛과 어둠의 대조를 십분 활용한 연출은 흑백 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미장센의 진수를 보여주고, 화면에 잡히는 모든 인물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딥포커스 기술은 현대 영화 연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플래쉬백을 적극 활용하여 시간적 배경을 흐트려 놓는 편집은 들뢰즈 같은 철학자마저 극찬을 하였고, 주인공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는 웅장한 세트장과 그 뒤의 공허함을 보여주는 신들린 듯한 롱테이크 연출은 그야말로 천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오손 웰즈에 대한 극찬도 빼먹을 수가 없겠죠. 겨우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감독과 주연 배우를 동시에 맡았고, 영화 제작사가 무조건 사수하려고 하는 최종 편집권까지 과감하게 내줄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는데요, 2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미친 연기력으로 소화해낸 건 물론이고, 감독으로 보여준 연출과 편집에 대한 역량도 극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없죠. 이 작품의 당시 최고의 촬영 감독이었던 그레그 톨란드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감독 오손 웰즈를 A부터 Z까지 트레이닝 시키면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각본을 쓴 허먼 맹키워츠(이 이름 잘 기억 해두세요! 다시 나옵니다!)는 <오즈의 마법사> 등 최고의 작품들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스타 각본가였죠. 이렇게 올스타급 제작진들의 힘으로 최고의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나 크게 성공했나요?

음, 아뇨. 이 작품은 쫄딱 망했습니다. 완전히 흥행 실패였죠. <시민 케인>의 주인공이 당시 미국 최고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했다는 말이 돌았거든요. 그리고 내용을 봐서 알겠지만, 이 작품은 끝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하던 주인공이 결국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죠. 아마 허스트가 보기에는 이 부분이 자신을 겨냥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언론사들에게 <시민 케인> 관련 광고를 전부 금지하고, 어떻게든 이 영화를 실패로 이끌기 위해서 애를 썼거든요.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데이빗 핀처가 넷플릭스와 의기투합하여 만든 영화 <맹크>의 주 플롯이 됩니다. 위에 언급됐던 허먼 맹키워츠를 부르는 애칭이 맹크거든요.

 

<시민 케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영화 <맹크> 포스터

<시민 케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게 영화 <맹크>의 주된 내용입니다. 저는 이 작품 소개를 보면서 <시민 케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각본가와 감독의 갈등, 혹은 영화 제작사와 각본가의 갈등이 주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본 내용은 많이 다르더군요. 제가 생각했던 부분은 서브 플롯에 가깝습니다.

<시민 케인>이 제작되었던 1940년 전후 할리우드의 실태, 그리고 그 중심을 살아가던 맹키워츠가 어떤 사건을 겪은 끝에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쓰게 되었나,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어떤 회유가 있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맹크>의 주플롯입니다.

핀처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

이 작품 역시 데이빗 핀처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순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크게 2가지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데, 첫 번째 시점(A시점)은 각본가 맹크가 기존에 일하던 MGM 영화사를 나온 후 <시민 케인>을 쓰는 장면이고 두 번째 시점(B시점)은 맹크가 MGM에서 일하던 시절입니다. B시점은 한참 과거에서 시작해서 영화 후반부에 A시점을 따라 잡으며 하나의 시점으로 통일됩니다. A시점은 1940년에 맹크가 글을 쓰는 단 몇 개월, 그리고 그 사이의 회유와 위기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반대로 B시점은 1930~1940년 10년간 맹크의 경험을 통해 황금기 할리우드의 숨겨진 뒷면을 보여주는 부분이죠.

할리우드 황금기의 뒷면

1930년대 당시 할리우드는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존 포드, 히치콕, 하워드 혹스, 빌리 와일더 같은 역사상 최고의 감독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킹공>,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역사상 최고의 히트작들이 줄줄이 제작되었죠.

그러나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겪으면서 역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발전 보다는 분배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죠. 이게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영화는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거든요. 그래서 재벌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영화사의 높으신 분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하여 영상이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분배 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인을 묻어버리기 위한 다양한 부정을 저지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할 수 없는 것

맹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적 캐릭터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알콜 중독 합병증으로 55세라는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할 정도였으며, 냉소적인 성격 덕에 적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작가들을 위한 노동조합 가입을 단번에 거절할 정도로 정 없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창작자들의 자유 제한하고, 영화를 부정한 의도로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맹크도 격렬하게 반대했죠. 그러다가 MGM 영화사의 물주였던 랜돌프에게 찍히게 되고, 그렇게 MGM을 새로운 영화사로 가서 만든 각본이 랜돌프를 모델로 한 <시민 케인>입니다. 각본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회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건 이 작품은 상영 되었고,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

영화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손익분기점의 미학‘이라고 불러요.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면 그 감독은 다음 작품을 만드는데 큰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죠. 실제로 오손 웰즈는 <시민 케인> 이후로 한평생 자신이 원하는만큼의 예산과 자유도를 받으며 작품을 만들지 못 했습니다. 그 천재적인 오손 웰즈 조차도요. 그러면 영화는 오롯이 산업인 걸까요?

아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예술입니다. 마틴 스콜세지가 뉴욕 타임즈에 작성한 기고문 내용 일부를 인용하며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헐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을 때에도 예술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과 사업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은 늘 있었습니다. 꽤 치열했죠. 하지만 아주 생산적인 긴장이었습니다. 그 긴장이 가장 위대한 영화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니까요. 밥 딜런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웅적이며 선구적‘이었죠."

영화가 성공해야 한다는 걸 아는 감독들이라고 할지라도, 창작자에게는 예술가로서 도무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거죠. 이에 대한 조율을 이뤄내기 위해서 창작자와 사업자가 피 터지게 싸우는 과정에 바로 영화 제작의 본질이고요.

데이빗 핀처가 넷플릭스에서 <맹크>를 만든 까닭은 기성 영화사에서 완전한 흑백 영화를 만드는 것에 흥행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서 거부를 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이나 묵혀뒀던 시나리오였는데, 넷플릭스에서 흑백이라도 좋으니 영화 제작을 들어가자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아직도 세계 어디선가는 타협하지 않고, ’상업성을 넘어서는 당위성을 가진 작품’들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 중에 실패하는 작품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나 몇몇 작품들은 살아남아서 세상의 수많은 영화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 될테죠. 저는 여전히 세계 어딘가에서는 위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을거라고 믿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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