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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미우라 켄타로 작가님의 부고를 듣고

by 환상의나비 2021. 5. 20.

베르세르크는 1989년부터 영애니멀에서 연재된 중세 판타지 만화입니다.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세계관과 등장인물들 간의 처절한 관계 구도, 

 

그러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의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을 놓치지 않는 모습들을

 

종이를 찢고 나올 듯한 실감나는 작화로 그려냈던 작품입니다.

 

점프나 썬데이 등의 대부분의 만화 잡지가 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위한 작품들을 연재하는 동안

 

미우라 겐타로는 인간의 본연적인 욕망과 세상의 억압,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물상을 그려냈던 진정한 의미로 성인들을 위한 만화가였습니다.

 


베르세르크는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40권의 단행본이 발매되었습니다.

 

연재 기간 대비 연재 분량이 많지 않으나....

 

이 작품만큼은 이를 작가의 번아웃이나 능력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위에 첨부된 그림들은 베르세르크에서 보여주는 소름 돋는 작화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본인의 완벽주의적 성향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만화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인해서 

 

늦어지는 연재에 대해서 어떤 독자가 불만을 표할 수 있겠습니까?

 

켄타로가 만화 출판 후 작성한 후기를 보면 베르세르크 주인공 못지 않게 

 

처절하게 만화를 그렸던 삶의 일부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1993년 14호 7월로 27살. 

되돌아보면 만화로 점철된 27년. 이대로 괜찮은가?


2000년 1호
게임샵에서 베르세르크 체험판에 열중중인 소년이! 

그 뒤에 도키메키메모리얼2를 들고 있는 내가! 잉여인간이거든.

2001년 10호
만화가 경력 13년, 처음으로 1주일 가량의 휴식. 

쿠메지마에 다이빙 면허를 따러 간다. 

친구들은 바쁘고, 여친도 없으니 혼자 간다.

2001년 24호
1개월 반동안 외출한 건 조나단에 밥먹으러 갔던 2시간 뿐. 

쁘띠 히키코모리?

2002년 7호
오랫동안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니 

입이 잘 안 돌아간다.

2002년 21호
2년동안 걸려온 전화 0. 휴대폰 해지하자. 

막장상태의 인간관계는 날 책상에 앉게 하는 원동력.

2004년 11호
처음으로 작업장과 침실 이외의 공간이 있는 집으로 이사간다.

2004년 12호
정신 차리고 보면 하루 삼시세끼를 칼로리메이트. 

몸은 건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위험할지도? 

이사하면 조금이라도 밥을 지어먹자.

2004년 23호
내 휴식은 2개월에 반나절. 

벌써 4년이나 2일 연속으로 쉰 적이 없다. 

슬슬 여기저기 쑤시기 시작한다.

2005년 9호
과로로 또 쓰러졌다. 

구인사가 이벤트 가고 싶어졌다. 우에~엥!

2006년 2호
30대도 얼마 안 남았다. 

만화 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일그러진 인생은 

이제 되돌릴 방법이 없으므로 이대로 GO!

2006년 3호
올해도 방콕이다~~!!

2006년 8호
드디어 30권. 

처음엔 2, 3권으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2006년 13호
최근 원고가 자주 늦어지고 있다.

 40살에 가까워지니 체력이 떨어진 듯.

2006년 18호
1화에 가볍게 1000명 이상 그리기. 

앞으로 한동안은 부정기연재가 됩니다만,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눈물)

2007년 3호
휴재한 동안에도 계속 군대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삶은 곧 만화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과 같았던 베르세르크 만화는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미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캐스커가 기억을 되찾고 가츠가 다시 그리피스를 향한 복수를 시작하려는 절정의 순간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독자들끼리 농담 삼아 작가님이 완결내기 전에 돌아가면 어떻게 하나 논하고는 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렇게 미미한 추모의 글을 쓰는 것 밖에 없네요.

 

그리고 더 할게 있다면 뒤늦게 나마 베르세르크 단행본을 사는 정도겠죠.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로 인해서 더 가치 있는 소장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죠.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며 작가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원고를 붙잡고 만화를 그렸던 미우라 켄타로 작가님이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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